우리 아이 친구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은지 10년이 넘은 듯합니다. 그 책의 내용이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는 이해받기를 원하고 남자는 문제를 해결해 주고 싶어 한다’라는 내용이 그 책의 핵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자가 그냥 스트레스 받아서 하는 얘기들을 들은 남자는 어떻게든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방법들을 찾아내거나 돕겠다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조언들을 내놓지만, 여자에게는 다 들리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문제들은 해결책이 필요 없거나 해결해 줄 수 없는 문제들입니다. 남자는 그냥 듣고만 있으면 되지요. 판단하지 말고, 조언하지 말고, 추임새를 적당히 넣어주며 잘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자가 그냥 가만히 듣고만 있으면 좋을 것을, 이리저리 해결해 준답시고 조언하는 남편을 여자는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여자도 엄마의 입장에 서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혼자 놀았다거나, 누가 뒤에서 밀었다거나, 생일 잔치에 자기만 초대받지 못했다거나, 난 친구가 없다고 말한다면 엄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당장 학교에 찾아가거나 친구 집에 들이닥치거나, 아니면 전화라도 한 통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강하게 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이들도 엄마한테 일장 하소연을 하고 나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상황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제 엄마한테 했던 말과는 달리 오늘은 그 아이와 너무 잘 지내는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엄마의 성급한 관여는 아이로부터 이런 기회를 박탈해 버립니다.
엄마는 아이가 문제에 대해 얘기하면서 스스로의 답답함을 풀어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아이의 얘기 속에 아이가 잘못한 부분도 있을 테니 균형 잡힌 시각에서 문제를 볼 수 있도록 살짝살짝 생각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져 줍니다. ‘네가 잘못했네’라는 말보다는 스스로 잘못한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지요. 사실 아이들은 이기적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는 인식하기 힘들지요. 또한 아이들은 다혈질입니다. 쉽게 화가 나고 쉽게 용서도 합니다. 아이들이 갖는 인간 관계의 문제는 아이 스스로가 초래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라는 것이지요.
아이의 유치원 생활, 학교 생활에 관여해야 할 때는 아이의 행동이 변할 때입니다. 밥을 잘 먹지 않거나 우울해 보일 때, 혹은 같은 아이가 또 괴롭혔다고 반복적으로 하소연할 때는 선생님과 대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시기적절한 중재(intervention)는 앞으로 큰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위험들을 미리 예방해 줍니다.
제 딸이 어릴 때 동네에 동양인이 없어 힘들어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백인 아이들의 부모들도 저희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아이들은 이미 자기들끼리 너무 친해서 아이가 끼어들 자리가 없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생일 잔치, Pumpkin Painting Party, Play Date 등을 정기적으로 했더니 아이 관계의 폭이 조금씩 넓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몇 개월이 지나자 아이에게 친구들이 여럿 생겼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동양인들도 괜찮은 사람들이다’라는 인식을 친구들과 그 부모들에게 심어주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것 같습니다. 외모가 틀리고 언어가 서투르니 다가오지 않는 사람들이었지만 한 번 다가오니 그 다음엔 어느 정도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물론 아이들이 자라면서 백인보다는 같은 동양인들과만 어울리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해져서 대학에 가면 주변엔 온통 동양인들로 둘러싸이게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물론 인종의 장벽을 극복하는 힘들다는 사실은 동양인만 겪는 문제는 아닙니다. 얼마 전에 큰 제약회사의 흑인 사장 인터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단한 배경에,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그 사람이 한다는 말이 ‘제약 업계에서 흑인 중역은 찾아보기 힘들다, 백인 중역들은 흑인 친구가 거의 없다. 흑인은 일단 중역 후보자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에서 수백 년을 살아온 흑인들도 이런 대접을 받는 것을 보면 인종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진 않다는 사실은 명백한 것 같습니다. 종의 벽처럼 뛰어넘기 힘든 장애물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요. 다만 나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건설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집중하면 됩니다. 잘 들어주고 이리저리 비판하거나 조언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해주려는 모습을 실천하며 아이에게 보여주세요. 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우리 아이, 이미 누군가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있을 겁니다.
베리타스 몬테소리 아카데미 Veritas Montessori Academy 김철규 원장